임혜지, 고등어를 금하노라 by 소박하고도




내가 원하는 행복한 삶과 내 가족 전체를 위한 행복한 삶 사이에서 갈등할 나이가 머지 않았다. 부인이 되고 엄마가 되면 나의 꿈과 안위를 위해서만 사는 삶은 보류하겠지, 혼자 행복해지는 것보다 둘이 행복해지는 방식을 택하겠지 등등 가족이라는 덩어리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서서히 깨우칠 날이 올 거다. 한국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그래서 항상 '희생'이었고 '억누름'이었다.

독일에서 독일인 남편과 두 명의 딸, 아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저자는 한국인이고 연세도 우리 엄마와 한 살 차이밖에 안나는 한국인 아줌마다. 그녀도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 무어를? 젊은 날 꿈꾸던 자신의 찬란한 미래를.
참 꺼림칙한 말이다, 청춘의 꿈을 가족을 위해 저버려야 한다는 거. 그런데 저자는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떠한 특정 직업, 특정 벌이가 아님을 잘 알았다. 그녀가 행복해지는 길은 원하는 직업을 꿰차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평생이라는 긴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가 함께 행복해지는 것에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자식들과 함께 하기 위해 프리랜서를 택했다. 남편 역시 부인과 자식들과 함께 하기 위해 회사에서 일 하다가도 점심은 집에 와서 먹고 다시 회사에 간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은 자신들이 평생 배워온 모든 것이 집안의 식탁 앞에서 이루어졌다고 고백한다. 멋지지, 내가 엄마라면 정말 엄청나게 흥분할 것 같다.

책은 가족원 한 명 한 명의 독특함을 풀어가며 엄마와 아빠와 아들과 딸이 얼마나 다르며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얼마나 다른 지 보여준다. 억척스럽고 고집 센 엄마와 아빠는 샤워하는 방식으로 싸우면서 환경에 이바지하는 삶에 대해 토론하는 반면 딸은 치장하는데에 모든 용돈을 쏟아부으며 어떻게든지 빚을 내서라도 사고 싶은 옷을 사고야 만다. 이 책의 큰 재미는 여기에서 나온다. 각자 추구하는 행복한 삶이 조금씩 다른데 네 명이 그것을 서로 존중하며 맞춰준다는 거다. 물론 투닥투닥 싸움질과 함께. 엄마, 아빠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전혀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자식들 또한 엄마, 아빠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이것이 힘들다. 혼자만 행복해지는 건 그나마 쉽지만 네 명이 한 울타리안에서 행복을 공유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환경, 자유라는 가치관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크게 관여하며 터치할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책의 또 다른 재미는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가는 쏠쏠함이다. 나치정권에 대한 기나긴 얘기들, 독일인들이 어떤 마인드로 역사 청산을 진행하고 있는지, 자국 내 외국인을 대하는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 우리나라처럼 자원 하나 없이 인력으로 경쟁력을 생산해내는 멋스러움,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교육 시스템 문제 등. 우리나라 형편과 가장 비슷하다는 독일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풀어가며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건 그들의 실수를 본받아 우리 나라는 동일한 실수를 겪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일제에 대한 역사청산을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하는지(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나 같은 일반인도 해야할 것들이 있었다), 경쟁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작금의 교육 시스템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 지 등 생각해 봐야 할 여지가 다분했다.

갈수록 내 또래 애들 얘기보다는 아줌마, 할머니 얘기가 재밌는 것 같다. 옹 나 이제 결혼해도 되나봐아.







지구 온난화와 에너지 고갈의 시대를 맞아 겨울의 실내 온도를 섭씨 18도 이하로 유지하고 싶어 하는 남편에 대항해서 사춘기에 돌입한 딸 아이는 평범하게 살 권리를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왜 자기는 하필이면 이런 집에 태어나서 남들이 다 편안하게 즐기는 휴가도 꼭 자전거로 다니면서 고생을 사서 하고, 겨울에는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기도 싫을 정도로 춥게 살아야 하는지, 아빠는 무슨 권리로 자식들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지 조목조목 따지며 반항했다.
부모 자식 간에 권위보다는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부부는 아이를 설득하고자 했지만, 번번이 딸아이의 말발에 밀려 결국 실내 온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딸 아이가 심경 변화를 일으켜 자발적으로 환경 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딸은 사춘기 청소년답게 설익은 풋사과의 단호함으로 우리 집 실내 온도를 하루아침에 섭씨 20도에서 18도로 뚝 떨어뜨렸다.(p.55)


우리 가정이 화목할 수 있는 비결은 참으로 사소하다. 바로 세끼 식사를 온 식구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비결이라 하기엔 대단치 않아 보이겠지만, 독일에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부부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고 있다. (생략)
우리는 절약하며 살기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남들 눈에는 별 볼일 없을지라도 우리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기에 승진이나 출세에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더 이상의 성공을 바라지도 않는데, 가족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의 행복을 포기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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